
1) 한덕수 징역 23년(구형 15년+8년) 선고와 ‘내란’ 첫 판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1심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특검팀 구형이 징역 15년이었으니, 선고 형량은 8년 더 무거운 셈입니다.

동시에 12·3 비상계엄 사안을 ‘내란’으로 규정하는 판단이 처음 제시됐다는 점이 크게 부각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이슈는 “한덕수 23년 선고”와 “내란 첫 판단”이 함께 묶여 움직였고, 그 결론을 내린 재판장 이진관 판사까지 검색어로 같이 떠오르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글에서는 “왜15년 구형보다 더 무거운 23년까지 갔는지”, “ 법정구속은 왜 했나”, “선고한 이진관 판사는 누구인가”를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2) 양형 포인트: 왜 ‘15년 구형’보다 8년 더한 23년이 나왔나
숫자만 보면 “법원이 왜 더 무겁게 선고했지?”가 가장 먼저 듭니다. 이번 사건에서 형량이 커진 핵심 배경은 ‘책임의 무게’가 어디에 놓였는지로 설명이 됩니다.

- 국정 2인자(국무총리) 지위 에 따른 책임 가중: 재판부는 국무총리가 ‘막을 수 있었던 지점’이 있었는지, 국무회의 절차와 국무위원 의견 진술 기회 보장 등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반대 의사를 더 분명히 표명할 수 있었는지”가 책임 판단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 내란 성립 판단과 결합된 ‘가담의 중대성’: 재판부가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판단하면서, 이에 관여한 역할의 비중이 형량에 직접적으로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사안이 내란으로 규정되면, 핵심 직위자의 관여·방치·절차 관여가 더 무겁게 평가될 여지가 커집니다.
-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및 사후 행위 요소: 공용서류 은닉·손상, 위증 등 여러 혐의가 함께 다뤄졌고,“예상보다 무거운 중형”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재판부가 사건의 중대성을 높게 본 흐름이 선고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3) 죄명은 ‘한 단계’ 조정했는데도 중형이 된 이유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건에서 특검은 더 무거운 죄명인 ‘내란 우두머리 관련 혐의에 방조 규정 적용’을 중심으로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법리상 적용 죄명은 그 아래 단계인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맞다고 보면서도, 실제 선고 형량은 구형을 뛰어넘는 징역 23년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부분은 ‘죄명 판단’과 ‘양형 판단’을 분리해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죄명은 법리 구조에 맞게 정리하되, 그 죄명 안에서 피고인의 역할·지위·책임·사건의 파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형량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 구형은 검찰·특검의 요청이고, 선고는 법원의 최종 판단입니다. 재판부가 본 사안의 책임과 파장을 더 무겁게 평가하면, 구형을 넘어서는 선고가 나올 수 있습니다.
- 동일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 죄명 안에서도 행위의 역할과 관여 정도, 직위의 무게, 사후 행위, 다른 범죄 성립 여부 등에 따라 양형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 특히 이번 사건은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어떻게 보느냐가 형량의 바닥을 바꿀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법원이 이를 내란으로 규정한 순간, 핵심 직위자의 가담·방치에 대한 책임 평가가 한층 더 무겁게 작동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4) 법정구속 사유: 왜 선고 직후 ‘바로 구속’까지 갔나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1심 선고 직후 법정에서 곧바로 구속됐습니다. 재판부는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법정구속을 결정한 것으로 정리됩니다.

법정구속은 유죄가 선고됐다고 해서 자동으로 이뤄지는 절차는 아닙니다. 재판부가 도주 가능성이나 증거인멸 위험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판단할 때에만 선고와 동시에 신병을 확보하는 조치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형량 선고에 그치지 않고 신병 처리까지 즉시 이어졌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사안의 중대성과 이후 절차상 위험 요소를 상당히 무겁게 봤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5) 이진관 판사 프로필
이번 사건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중형 선고뿐 아니라,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판단한 첫 재판이라는 점에서 재판을 맡은 재판장 자체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그 판단을 이끈 인물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재판장인 이진관 부장판사입니다.
- 1973년생(보도 기준), 경남 마산고 졸업
- 서울대 법대 졸업
-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 2003년 사법연수원 32기 수료
- 수원지법에서 법관 생활 시작 후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대구지법 포항지원·인천지법 등 근무
- 201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법원 내 엘리트 코스)
- 2022년 사법연수원 교수 역임
- 2025년 2월경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선거·부패) 부장판사로 발령 보도(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사건 등 담당 보도)
굵직한 형사 사건을 다뤄온 이력 위에서,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본 판단’을 이끈 재판장이라는 점이 이번 사건에서 이진관 판사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킨 배경으로 정리됩니다.
6) 이진관 판사 소송지휘: 감치·과태료·직설 질문이 의미하는 것
재판 과정에서 이진관 판사가 일관되게 드러낸 기준은 ‘법정 질서를 흐리지 않겠다’는 태도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짚겠다’는 방향이었습니다. 재판부의 이러한 소송지휘는 몇 가지 장면에서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 법정 질서에 대한 즉각적 조치: 재판부는 법정에서 소란이 발생하거나 재판부를 향한 모욕적 발언이 문제 된 상황에서 감치를 선고하며 즉각 제동을 걸었습니다.
- 선서 거부에 대한 과태료 부과: 증인이 형사재판에서 선서를 거부하자 재판부는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재판 절차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분명히 드러난 대목입니다.
- ‘피해자’ 프레임에 대한 반박과 책임 추궁: 국무위원들이 책임을 회피하거나 소극적 태도를 보인 정황에 대해 “왜 그때 반대하지 않았나”, “막을 수 있는 위치 아니었나”와 같은 직설적인 질문을 통해 책임의 범위를 분명히 짚었습니다.
7) 판결문에 담긴 재판부의 메시지: ‘국민의 용기’를 언급한 이유
이번 1심 선고에서 판결문 자체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한 법리 설명을 넘어 재판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비교적 분명한 언어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인 이진관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약 한 시간가량 직접 낭독하며 12·3 비상계엄 사태의 성격과 책임 소재를 짚었습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란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행위 자체가 몇 시간 만에 종료됐다”는 피고인 측의 주장을 언급한 뒤, 그 이유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석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러한 결과가 내란 가담자들의 자제나 판단 때문이 아니라,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신속히 의결한 일부 정치인들의 행동, 그리고 위법한 지시와 명령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으로 따랐던 일부 군인과 경찰 공무원들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특히 재판부는 “결코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책임의 방향을 명확히 했고, 이 대목에서 내란의 중대성과 국가 질서에 대한 침해를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재판부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8) 향후 전망: 항소심에서 달라질 수 있는 지점
1심 선고 이후 관심은 항소심에서 무엇이 다시 판단 대상이 될지에 모아집니다. 이번 사건에서 항소심의 핵심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본 1심 판단, 즉 폭동성과 국헌문란 목적에 대한 판단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될지 여부
-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관여 정도를 적극 가담으로 볼지, 방조·묵인으로 볼지에 대한 재평가와 국무총리라는 직위에서 요구되는 책임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여부
- 징역 23년이라는 양형과 선고 직후 법정구속 판단이 항소심에서 어떤 결론으로 정리될지 여부

이번 사건은 1심에서 ‘내란 첫 판단’이라는 기준점이 형성된 만큼, 항소심 결론에 따라 해당 판단의 의미와 파장이 다시 한 번 논쟁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있습니다.